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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윤리와 식물 복지

식물도 생각을 할까? 식물한테도 지성이 있을까? 특정 동물의 식용에 대해서는 인종적·문화적 편견·차별로 가득 찬 공격적 언사까지 불사하는 사람들도 식물 파괴에는 무관심하거나 지나치게 관대하다. 식물의 존엄성에 대해 알아보자.

  • 국립원예특작과학원
  • 2023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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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식물 윤리와 식물 복지 1편. 식물의 의미와 가치 다시 보기 21세기 우리는 어느 때보다도 사회, 경제, 문화적으로 윤택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도화된 문명을 만들기 위해 지난 8천 년간 전 세계 토지의 55%가 농지와 주거지로 전환되었고, 매년 3만~5만 여종의 식물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생물다양성 감소가 점점 더 빨라지고, 이 때문에 인류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는 건데요. 이런 우려 속에서 최근 반가운 소식이 들렸습니다. 바로 농촌진흥청에서 발표한 ‘식물 존엄성 선언문’인데요. 이 선언문은 식물 또한 우리 인류나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생명을 가진 소중하고 존엄한 존재라는 것을 선언함으로써 식물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변화시키고, 나와 생태계 더 나아가서는 지구를 살릴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죠. 식물 존엄성 선언문! 과연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한 번 만나볼까요. 농촌진흥청에서는 지난 2013년 최초로 치유농업 개념을 정의하고, 2020년 치유농업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는 등 식물과 인간의 교감과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연구를 꾸준히 진행해오고 있는데요. 이를 바탕으로 한 치유농업과 반려식물 산업에서는 여전히 식물을 도구나 수단으로 바라볼 뿐 생명을 가진 존엄한 존재로 인지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저희는 식물 권리와 존엄성에 관한 연구를 바탕으로 식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을 바로잡고, 식물 윤리에 대한 올바른 개념을 정립하고자 ‘식물 존엄성 선언문’을 작성하게 됐습니다. 식물 존엄성은 우리에겐 낯설지만,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독자적인 탐구 영역으로 발전해나가고 있고요. 스위스 비인간 생명공학에 관한 연방윤리위원회(ECNH)는 2008년 ‘식물의 존엄성에 관한 보고서’를 만장일치로 발표했으며, 2018년에는 Angela Kallhoff 등이 저술한 식물 윤리(Plant ethics)에 관한 저서가 출판되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저희 농촌진흥청 역시 식물 존엄성 선언문을 마련하고, 그 안에 식물의 의미와 가치, 식물 존중의 기본 원칙과 적용원칙 그리고 반려 식물에 관한 내용을 담았습니다. 최근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식물 관련 소식들. 바로 그 주제 역시 식물도 엄연히 살아 있는 생명체임을 증명하는 연구들인데요. 과연 식물의 존엄성이란 무엇일까요? 식물의 존엄성이란 식물도 본래의 가치를 지니기 때문에 그 자체로 존중받을 자격을 지닌다는 개념입니다. 즉, 식물도 살아있는 생명체이니 인간은 식물을 단순히 인간을 위한 도구로 생각해 임의로 해를 끼치거나 파괴하는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죠. 식물은 움직이지 않고,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단순한 생명체 아닌가요? 식물은 아주 천천히 움직이기 때문에 우리는 식물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여러 연구 결과를 통해서도 밝혀졌듯이 식물은 빛을 통해 주위 환경을 파악하고 주변의 화학물질들을 감지해 외부 신호를 감지하며, 우리처럼 전기신호를 통해 체내 신호를 전달합니다. 따라서 방식만 다를 뿐 그 누구보다도 식물은 적극적으로 외부 환경에 반응하며 살아가는 능동적인 생명체인 거죠. 2편. 식물 다시 알기 그렇다면 우리는 식물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그 답은 식물 존엄성 선언문에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외부 환경을 감각하고 이를 생존에 유리하게 활용하는 식물을 생명체 자체로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둘째, 정당한 이유 없이 식물을 해하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 식물이 각자의 특성에 맞게 최적의 생명 활동을 할 수 있게 도와야 하며, 넷째, 식물과 인간, 동물의 좋음(행복)이 공평하게 고려돼야 합니다. 다섯째, 인간과 식물의 관계는 종의 정의에 근거해 정립되고, 종차별주의, 종이기주의 관점은 사라져야 하며, 여섯째, 우리는 식물의 서식지를 보존하고 가꿔야 합니다. 그럼 모든 식물을 다 가꾸고 보호해줘야 하나요?! 아닙니다. 일단 우리는 식물을 크게 4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는데요. 야생에서 자연적으로 자라는 ‘야생식물’과 인간이 섭취하고 이용하기 위해 재배하는 쌀이나 과일 같은 ‘재배식물’ 그리고 보고 즐기기 위해 키우는 ‘화훼·경관식물’, 마지막으로 우리 인간과 교감하고 정서적 유대관계를 맺는 ‘반려식물’입니다. 식물 존엄성 선언은 이렇게 분류된 식물들을 생명체로써 존엄하고, 존중할 존재로 여겨야 한다는 의미의 선언일 뿐 식물을 먹으면 안 된다거나 가지치기, 솎아주기와 같은 농작업 활동, 식물을 이용한 실험, 제초제 사용 등을 금지한다는 제약이나 제한적 의미의 선언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는 야생식물의 서식지를 불필요하게 파괴하거나 남획하는 등의 행동을 지양해 빠르게 감소하고 있는 식물 종을 유지하고, 인간의 이익을 위해 다른 식물에 인위적으로 해를 끼칠 수 있는 행동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식물의 존엄성 선언문은 인간의 행동 규제나 제한이 아닌 식물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인식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3편. 식물 존중 실천하기 그럼 우리 생활 속에서 누구나 쉽게 식물 존중을 실천하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요? 지금 주변을 살펴보세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화분 속 그 식물들이 바로 반려식물입니다. 반려식물은 철저하게 그 생명을 우리에게 의존하고 있죠. 따라서 우리에겐 그들을 돌볼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잘 돌보기 위해서는 식물 종의 특성에 맞게 물주기와 햇빛 비춰주기, 분갈이 해주기와 같은 적절한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는데요. 이를 통해 식물과 교감하게 되고, 그 존재를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바로 식물 존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또, 더 넓게는 환경 보호에 관심을 갖고, 우리 식탁에 올라 온 다양한 식물들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며, 어렸을 때부터 텃밭 활동을 하거나 치유농업을 경험해 보는 것, 이것 역시 식물을 대하는 인식 자체를 변화시키는 좋은 방법입니다. 이렇게 식물은 생명이 있는 존엄한 존재라는 인식 아래 현재 농촌진흥청 도시농업과에서는 식물을 활용한 농업 활동을 통해 사람들의 신체적·정서적 문제를 개선하는 치유농업과, 사람과 식물 간의 교감과 반려 증진을 위한 호르몬, VOC 등과 같은 화학적 언어의 탐색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식물에 의한 심리, 정서적 안정 효과, 공기 정화 효과, 미적·교육적 효과 등 식물의 다양한 기능적 효과들에 대한 연구 또한 수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식물과 인간은 모두 생명을 가진 소중한 존재라는 마음가짐으로 식물을 대할 때, 식물의 멸종과 지구의 종말을 막을 수 있고, 나아가 우리 모두의 삶에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식물 존엄성 선언의 핵심 가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