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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농] 한국인의 소울푸드 김치! 그런데 배추가 옛날에는 잡초였다?!

  • 농촌진흥청 대변인실
  • 2021 년
  • 55
시나리오

안녕하세요! ‘알쓸신농’입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바로바로...배추입니다. 지금이야 배추의 인기가 매우 많고 어떨 땐 배추 값이 금값이라고 하지만, 원래 배추가 잡초 취급 받았다는 거 아시나요? 배추의 조상은 맨 처음 지중해 연안 지역에서 발견되어 잡초 성 유채로 알려져 있었는데 2천 년 전,이 유채가 중국으로 전파되어 고려시대에 한반도로 건너 왔다고 추정되는데요. 배추의 존재가 등장한 우리나라 최초의 문헌은 바로 고려 고종 때 발간된‘향약구급방‘! 문헌 속에는 원시형 배추를 숭(菘)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맨 처음에는 배추가 흰 채소가 아닌 푸르른 채소였기 때문이라는 것을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이후에 교배를 거듭하여 배추의 흰 빛깔이 두드러지자 이에 따라 이름도 백숭,백채 등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비교적 일찍 배추가 전파되었으나, 이후 중종,순조 때에도 중국으로부터 숭채 종자가 수입되었다는 기록을 볼 때 여전히 국내에서 배추 종자를 생산하는 것은 어려웠음을 알 수 있는데요. 그러다가1800년대에 중국에서 도입된 반결구배추가 토착화되면서 탄생한 것이‘개성배추’입니다. 배추는 채소재배 기술이 가장 앞선 개성을 중심으로 재배되었는데 1900년대에는 배추 재배가 많았던 서울지방으로 옮겨지면서 ‘서울 배추’가 탄생하며 개성배추와 서울배추,이 둘이 배추계의 쌍벽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땅에서 나는 토종 배추에도 위기가 왔으니... 토종 배추는 맛이 좋다는 장점이 있지만,수량이 적고 추위에 약하여 가격이 비싸다는 단점이 있었죠. 당시 일제강점기 시절을 겪었던 우리나라는 식량 수급이 어려웠는데 조선총독부에서는 가격이 비싼 재래종보다는 재배되는 양이 많은 중국계 배추를 장려하였습니다. 따라서1930년대에는 결구배추가 전국으로 확대되었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이후 일본이 철수하면서 우리 배추 산업의 기반이 없어지게 되었는데요. 그러자 농업 생산력이 부족한 대한민국은 우량종자의 개발과 보급이 절실했습니다. 한국은 이를 위해 일본에 있던 우장춘 박사를 불렀고,그는 새로운 배추 품종을 개발하게 됩니다. 바로 최초의 일대잡종 배추품종인‘원예1호’와‘원예2호’말이죠. ‘개성배추’와‘서울배추’에 비해 수확량이 많고 맛이 좋을 뿐 아니라 병충해에도 강해 농민들의 호응까지 좋았는데요. 이로써 배추는 식민지와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 땅의 국민들에게 배고픔을 달랠 수 있는 부식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의 배추 품종 기술은 세계적으로 인정 받고 있으며, 종자 수출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데요. 이전에는 가을에만 가능했던 배추 재배가 이제는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 내내 가능해져 해외에서도 우리 배추에 대한 러브콜이 쇄도! 게다가 농촌진흥청은 속잎이 귤색인 배추,항암 기능성 물질인 글루코시놀레이트 함량이 보통 배추보다 2~4배 정도 높으며 뿌리혹병에도 저항성이 있는 배추, 또 지구 온난화와 과잉 생산으로 인한 가격하락을 막기 위해 재배 기간이 짧은 배추 등을 개발하여 다양한 배추 품종 개발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여전히 모르는 것들이 많은 배추의 세계 품종 개량을 통해 더욱 더 멋지게 거듭날 배추의 변신을 앞으로도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