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수세미와 도토리와 사과

  • 등록일 2021-10-15
[사진][생각의 숲] 수세미와 도토리와 사과


수세미 풍년이다. 사랑방 부엌 지붕 위로 올린 수세미 두그루. 어른 팔뚝만 한 수세미들이 스무개쯤이나 달렸다. 푸른 덩굴이 번져 뜨거운 뙤약볕을 가려주고, 노란 꽃들 위로 붕붕거리는 벌나비들의 춤사위가 서늘해진 지금까지 이어진다. 더구나 슬레이트 지붕 위까지 뻗친 덩굴 속에서 길쭉길쭉 자라는 열매들을 수확하는 기쁨이라니!

우리 집에서 수세미들이 잘 여물기를 간절히 기다린 건 아내. 주방에서 사용해온 수세미가 아크릴로 만든 것인데, 그 인조 수세미가 미세 플라스틱을 배출한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더욱 천연 수세미를 사용하고 싶어했다.

며칠 전 드디어 수세미를 따는 날. 먼동이 트자 아내의 성화에 못 이긴 나는 사랑방 부엌 지붕에 사다리를 걸쳐 놓고 낫을 사용해 누렇게 여문 열매들을 땄다. 덩굴에 매달린 수세미를 하나씩 따서 사다리 밑에 선 아내에게 건네줄 때마다 로또를 맞은 것도 아닌데 ‘대박 대박’ 하며 환성을 질러댔다. 열개쯤 따서 아내에게 건네준 뒤 아직 덜 여문 열매들은 가을볕에 더 익도록 그대로 두고 사다리에서 내려왔다.

아내는 내가 딴 수세미들을 사랑방 쪽마루 위에 자랑스레 전시하듯 쭉 늘어놓았다. 가지런히 놓인 수세미들을 내려다보다 문득 드는 생각. 만물의 영장이라고 으스대지만 이런 식물들이 없으면 도대체 인간들은 자기 내면의 빈자리를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 것인가. 대자연이 선물로 안겨주는 값없는 기쁨을 누릴 때 우리의 삶이 더 풍성해지는 것이 아닐까.

늦은 조반을 먹고 있는데, 이번엔 아내가 도토리를 주우러 가자고 보챘다. 워낙 도토리묵을 좋아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결실의 기쁨을 맛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리. 우리는 배낭 하나씩 걸머지고 집에서 멀지 않은 백운산으로 향했다. 전에 백운산 등산을 하며 떡갈나무 군락지를 보아둔 터. 우리 조상들이 떡을 찔 때 시루 밑에 깐다 해 떡갈나무라 부르는 이 나무의 열매가 바로 도토리다. 한시간쯤 허위허위 산을 걸어 올랐을까. 떡갈나무 군락지에 도착했으나 벌써 누가 다녀간 듯 떡갈나무들 밑에는 도토리들이 몇알 보이지 않았다. 도토리를 주워 비닐봉지에 담던 아내가 주운 도토리를 다시 나무 밑에 쏟아놓으며 말했다. “도토리 좀 주워가고 싶었는데…. 다람쥐들 양식으로 남겨두고 가죠.”

허전한 마음으로 산길을 내려오던 우리는 산자락 끝에 걸려 있는 사과농장을 만났다. 농장에는 나무들마다 잘 익는 사과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얼마나 빨갛게 잘 익었는지 사과들은 저마다 불타는 태양처럼 보였다. 어떤 사과나무 가지들은 결실의 무거움을 견디지 못해 아예 땅에 주저앉아 있었다. 우리는 불타는 듯한 태양의 화신들을 바라보며 딱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오, 풍요 그 자체야, 풍요!” 내가 소리치자 아내도 왕방울 눈으로 사과들을 바라보며 맞장구를 쳤다. “따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네요.”

사과밭가에 퍼질러 앉은 우리는 잠시 넋을 잃었다. 따 먹지 않아도 배부른 풍요. 우리가 꿈꾸는 낙원이 불만이나 결핍이 들어설 곳이 없는 곳이라면 사과밭에서 그런 낙원을 보았다. 우리가 꿈꾸는 하늘나라가 위선이 들어설 곳이 없는 곳이라면 붉은 알몸을 드러낸 사과밭에서 그런 감흥에 젖어들었다. 산자락을 빠져나오면서 우리는 옷을 벗진 않았지만 그동안 세속에 살면서 덕지덕지 껴입은 불만과 결핍을 벗어버렸다. 우리 자신도 모르는 새 두껍게 껴입은 위선도 벗어버렸다.

고진하 (시인, 잡초연구가)


<출처  :  농민신문 >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