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럼피스킨병 최초 신고했는데…돌아온 건 생업 중단”

  • 등록일 2023-10-25
[사진]“럼피스킨병 최초 신고했는데…돌아온 건 생업 중단”


국내에서 처음으로 럼피스킨병이 발생한 충남 서산의 한우농장에서 의심증상을 발견하고 19일 방역당국에 최초 신고한 이는 해당 농장에서 진료를 보던 정재관 수의사였다. 그의 공익신고 덕분에 국내 첫 럼피스킨병 발생을 확인할 수 있었고, 조기 방역 조치도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었다. 그러나 정 수의사는 신고 이후 행정기관의 방역지침에 따른 이동제한으로 생업인 진료가 중단된 상황이지만 아무런 지원도 못 받고 있다.

◆이동제한 조치에 따른 피해 보상 규정 없어=서산시청은 현재 정 수의사에게 열흘간 이동제한명령을 내린 것으로 본지 취재 결과 확인됐다.
‘가축전염병 예방법(가전법)’ 제19조는 ‘시장·군수·구청장은 가축전염병이 발생하거나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가축전염병을 전파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 차량 및 오염 우려 물품 등에 대해 이동제한 조치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발생농장에서 바이러스에 접촉했기 때문에 추가 확산을 막기 위해선 이런 조치가 필요했다”면서 “필요에 따라선 기한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밝혔다.
현재 해당 수의사는 자택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자택 밖을 나갈 수 없으니 사실상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당장 생업을 영위하기 어렵게 됐지만 이에 따른 보상 규정은 법적으로 마련돼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가전법 제48조에 따르면 사육제한명령에 따라 폐업 등 손실을 본 농가나 살처분 조치가 이뤄진 가축의 소유자, 사용정지 명령을 받은 도축장 소유자 등에 대해서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동제한 조치를 당한 수의사에 대한 보상이나 피해구제 내용은 포함돼 있지 않다.
◆신고자는 공익제보자…피해 보는 일 더는 없어야=축산업계 전문가들은 정 수의사가 면밀하게 병변을 관찰하고 방역당국에 적극 신고함으로써 더 큰 확산을 막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번 신고 전까지는 국내에 해당 질병이 발생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면 더 큰 피해가 발생했을 수 있었던 상황이다.
정 수의사는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매일 확산세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뉴스를 보며 축산업 전반에 큰 피해가 갈까봐 안타깝다”면서 “일을 나가지 못하고 며칠째 집에 머무르고 있는데 이에 따른 보상이 없는 점은 조금 아쉽다”고 전했다.
과거에도 가축전염병이 발생했을 때 지금과 마찬가지로 보상 규정이 없다보니 공익신고 수의사들이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 2002년 경기 안성에서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 최초로 의심신고를 했던 이승윤 한별팜텍 원장(수의학 박사)도 당시 이동제한 조치가 이뤄졌지만 어떤 보상도 받지 못했다.
이 원장은 “현장 진료를 하는 수의사들이 질병을 발견할 가능성이 가장 큰데, 질병을 빠르게 확인하고 확산을 막기 위한 공익 제보자 역할을 했음에도 오히려 피해를 보는 상황은 불합리한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질병 조기 발견 위해선 적극적 신고체계 마련 필요=전문가들은 단순히 한 개인의 피해를 구제한다는 차원을 넘어서 방역체계가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라도 이동제한 조치에 따른 피해 보상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수의사 출신인 최기중 충남 서산태안축협 조합장은 “질병의 대량 확산을 막기 위해선 초기에 빠른 신고가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미비점을 개선해 빠른 신고를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허주형 대한수의사회장은 “질병을 신고하면 십수일간 영업을 하지 못하고 일종의 낙인이 찍히는 문제도 발생해 수의사들이 질병 신고를 꺼리게 될 우려가 있다”면서 “이런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동제한 등 피해에 대한 보상과 더불어 해당 수의사를 보호할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하늘 기자 sky@nongmin.com

<출처  :  농민신문 >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