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지 감귤도 스마트팜 재배 시대…김종우 샛별한라봉농장 대표(제주 서귀포)

  • 등록일 2023-10-26
[사진]노지 감귤도 스마트팜 재배 시대…김종우 샛별한라봉농장 대표(제주 서귀포)




국토 최남단 제주 서귀포. 
김종우 샛별한라봉농장 대표는 이곳이 만감류가 최고의 맛을 자랑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말한다. 감귤은 열매가 오래 열릴수록 맛이 좋아지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랫동안 따뜻한 날씨를 보이는 서귀포가 제격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더해 적절히 불어오는 해풍은 각종 유기물·미네랄을 작물에 제공한다. 농장의 감귤은 자연스레 고품질에 한발짝 더 다가선다.
하지만 주어진 환경에서 작물을 키우기만 했다면 그를 ‘감귤의 대가’라고 부를 순 없었을 것이다.
정보통신기술(ICT) 관련 대기업을 다니다 2001년 귀농한 그는 12년 만인 2013년 ‘농업마이스터’ 반열에 올랐다. 그가 지금 같은 위치까지 도달할 수 있던 철칙을 소개한다.

◆물과의 전쟁서 승리하라…‘타이벡 농법’ 적용해 수분 조절=감귤의 단맛을 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수분이다. 똑같은 양의 설탕이 들어있는 컵에 물을 많이 넣을수록 밋밋한 맛이 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제주 서귀포는 연평균 강수량이 1900㎜로 전국평균인 1300㎜보다 1.5배 정도 많은 비가 내린다.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당도가 낮아질 우려가 있다. 김 대표가 감귤 농사를 ‘물과의 전쟁’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과장이 아닌 셈이다.
감귤이 품게 되는 수분을 조절하기 위해 택한 방법은 ‘타이벡 농법’이다. 타이벡은 하얀 비닐 필름을 일컫는데 이 하얀 천을 비가 한창 내리기 전인 6~7월 농장 바닥에 깐다.
비닐로 잘 포장된 토양은 건조함을 적당하게 유지할 수 있다. 아무리 비가 많이 오더라도 비닐 위에만 비가 고이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김 대표는 감귤나무를 경사에 따라 심었다. 고인 물이 기울어진 면을 타고 잘 흘러 내려가게 하기 위해서다. 

타이벡 농법의 또 다른 장점은 하얀 비닐에 반사되는 빛이다. 감귤나무는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빛에다 비닐에서 반사되는 빛까지 받아 이전보다 더 많은 광합성을 할 수 있다. 
또한 나무 아래쪽과 가지 안쪽에 숨은 열매에도 빛이 전달돼 전체적으로 고르게 착색된다.
과수원을 포장한다는 것이 얼핏 간단하게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드넓은 농장에 하나하나 하얀 천을 깔기는 쉬운 일이 아니라고 김 대표는 귀띔했다.  
인건비·자재비가 추가로 들어갈 뿐만 아니라 타이벡을 까는 시기는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때인 만큼 작업 자체가 무척 힘들다. 더욱이 제주는 바람이 세게 불어 힘들게 깐 비닐 필름이 벗겨지는 일도 많다. 
이러한 단점에도 김 대표가 수고로움을 감수하는 이유는 ‘프리미엄 감귤’을 생산하기 위해서다. 타이벡 농법으로 감귤을 재배하면 당도가 평균 2브릭스(Brix)는 올라간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 대표는 “제주지역 전체적으로 감귤 당도가 평균 1브릭스 오르면 전체 농가소득이 1000억원 오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면서 “작은 변화가 농가소득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노지 스마트팜'으로 꾸준한 관리…실패는 데이터로 삼아=제주의 올여름은 말 그대로 전쟁이었다. 폭우·폭염이 연달아 찾아오면서 낙과율·열과율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무려 20~30% 생산량이 줄어들 것으로 추정됐다. 
그래도 샛별한라봉농장은 다른 농장에 견줘 참사는 면했다. 10년 전부터 노지에 설치한 스마트팜 설비로 농장 상태를 면밀하게 관리·관찰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스마트팜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2013년부터 노지감귤 과수원에 첨단 장비를 들였다. 

기본적인 재배 환경인 기온, 바람 세기, 습도 등을 측정하는 기기부터 물·물거름을 자동으로 급이하는 설비까지 고루 갖췄다. 
수액흐름 센서도 있다. 김 대표에 따르면 토마토처럼 줄기가 부드러운 작물은 수액 흐름을 확인하는 장치를 설치하기 쉽다. 
그러나 감귤나무는 나무가 단단해 설치가 어렵다. 그럼에도 김 대표는 작물 상태를 철저히 파악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몇몇 나무 기둥 물관부에 구멍을 내 센서를 설치했다.
나무마다 ‘인식 칩’도 설치했다. 여러 설비로 얻은 정보를 개별 나무마다 확인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장비 설치만으로 작물 관리가 척척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엔 당도에만 신경 써 물 주는 걸 최소화했다. 의도대로 당도가 아주 높게 나왔지만 시장에서 그다지 좋은 호응은 얻지 못했다. 
물을 너무 적게 주면 산도, 즉 신맛이 강해져 소비자가 꺼리게 된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한라봉을 재배하는 시설하우스에서도 실패를 겪긴 마찬가지였다. 한라봉이 생장하기 가장 적절한 온도는 28℃다. 
김 대표는 해당 온도를 설정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하지만 하룻밤 사이에 한라봉이 모조리 떨어져 버렸다. 이유를 알아보니 센서보다 위에 있는 나뭇가지 온도가 무려 40℃가 넘어가면서 나무는 물론 열매에 손상을 준 것이었다. 
한해 농사를 망쳤지만 김 대표는 실망하지 않고 환기 시스템을 정비하는 데 주력했다.  
“실패는 성공하기 위해 처절히 움직였을 때 나타나는 겁니다. 바람직한 거죠.”
김 대표는 실패를 거울로 삼았다. 낙담하지 않고 해당 경험에서 해결 방법을 찾아내고자 했다. 
이런 노력이 바탕이 돼 그는 2021년 농림축산식품부 선정 신지식농업인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노지 스마트팜으로 고품질 감귤을 생산한 점을 인정받은 것이다.

◆재배만큼 중요한 수확…고품질만 수확하라=“농민은 대개 잘만 재배하면 제일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재배만큼 중요한 것이 수확입니다.”
김 대표는 “꼭 봐야 하는 게 있다”며 비파괴 당도 측정기를 꺼내들었다. 노지감귤에 대보니 기기엔 14.2Brix라는 놀라운 숫자가 떴다. 
제주도농업기술원의 2022년 조사에 따르면 노지감귤 평균 당도는 9.2브릭스다. 샛별한라봉농장의 감귤이 시장에서 명품으로 취급받는 이유다. 
이에 더해 김 대표는 언제나 고당도 상품만 골라 수확한다. 수시로 품질을 확인하면서 열매를 따기 때문에 인건비가 더 들기는 한다. 하지만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차별화 때문이다. 
몇몇 농가는 익은 감귤과 그렇지 못한 감귤을 한번에 수확해 시장에 내놓는다. 이런 물량은 균일하지 못한 품질로 시장에서 좋은 가격을 받지 못하는 게 대부분이다.

착색 모니터링 기계도 김 대표의 명성에 한몫을 보탠다. 하루 24시간 감귤이 익어가는 전 과정을 관찰한 결과를 데이터로 도식화·정보화해 축적한다. 이 기계만 들여다보면 알맞게 잘 익은 과실을 확인할 수 있어 인건비를 아끼면서 수확 적기를 파악할 수 있다.
샛별한라봉농장은 감귤 1만6520㎡(5000평), 한라봉 1983㎡(600평), 레드향·천혜향 1652㎡(500평) 규모로 재배 중이다. 
그 가운데 감귤 수확량은 지난해 기준 3만7500㎏(1만관)이 조금 넘었으며 1억~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올해는 열과 피해가 심해 이보다 조금 밑돌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의 다음 걸음은 후진 양성에 있다. 2021년 농촌진흥청으로부터 최고 영예인 대한민국 과수 분야 최고 농업기술 명인에 선정된 노하우를 아낌없인 전한다는 구상이다.
그는 “귀농하고 명인이 되기까지 걸어온 길이 쉽지만은 않았다”며 "힘들 때마다 많은 선배에게 도움받았던 것을 늘 기억한다”고 떠올렸다.
덧붙여 “이제껏 경험한 실패·성공 경험을 후배 농민에게 아낌없이 전하면서 그들이 겪는 시행착오에 보탬이 되겠다”고 밝혔다.

고품질 농산물 생산, 차별화한 브랜딩, 안정적인 판로 확보, 원가 절감, 해외 시장 진출 등…. 오늘날 성공 영농을 위한 전략에는 수십가지가 요구된다. 한두곳 선도농가의 비결로는 각자의 해답을 쉬이 얻기 어렵다. 각 분야 고수들이 걸어간 길을 참고해 나만의 이정표를 만들어보자. ‘고수의 N계명’은 N명의 농부에게 듣는 성공 노하우다. 그리고 한걸음 먼저 나아간 이들이 전하는 N가지 영농 지침서다.

서귀포=홍지상 기자

<출처  :  농민신문 >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