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 제소 피하려면 쇠고기 수입 불가피” vs. “농가 생존·국민 안전 우선돼야”

  • 등록일 2023-10-31
[사진]“WTO 제소 피하려면 쇠고기 수입 불가피” vs. “농가 생존·국민 안전 우선돼야”



1년11개월째 국회에서 계류 중이던 프랑스·아일랜드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안)이 10월31일 열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또다시 계류 결정이 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간 우리 정부의 수입 추진과정과 이를 둘러싼 여러 쟁점을 정리했다.
◆프랑스·아일랜드, 십수년전부터 국내 시장 문 두드려=지난 2000년 유럽에서 소해면상뇌증(BSE·광우병)이 발생한 이후, 유럽연합(EU)산 쇠고기 수입이 전면 금지됐다. 프랑스와 아일랜드에선 비교적 최근인 지난 2016년·2020년에도 각각 비정형 BSE가 발생했다. ‘가축전염병 예방법’에 따르면 BSE 발생국에서 쇠고기를 수입하려는 경우 국회에서 수입위생조건에 대해 심의받아야 한다.
프랑스와 아일랜드는 각각 2008년·2006년부터 우리 정부에 자국산 쇠고기 수입을 허용해 달라고 요청해왔다. 이후 여러 절차를 거쳐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2021년4월 프랑스·아일랜드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안을 마련해 행정예고한 이후, 다음달인 5월 국회에 해당 안을 심의해 달라고 요청했다. 같은 해 12월 국회 농해수위 전체회의에 해당 안이 상정됐지만, 곧바로 계류 결정이 났다.
프랑스와 아일랜드는 지난 2021년12월 이후 지금까지 지속해 수입허용 절차를 이어갈 것을 우리 정부에 요청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1년11개월 뒤인 2023년10월31일에 이르러 계류된 안에 대한 심의가 이뤄졌지만, 또다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끝난 것이다.
◆정부, “현 조건이 최선…절차 진행되지 않으면 WTO 제소 가능성 커”=우리 정부가 프랑스와 아일랜드산 쇠고기 수입 허용에 열을 올리는 건 EU가 미국 등 다른 쇠고기 수출국들과의 차별을 문제 삼으면서 지속해 통상 압박을 넣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2019년 네덜란드·덴마크산 쇠고기 수입 허용 결정 당시 심의 기간이 1년여에 불과했던 점도 더는 프랑스 아일랜드의 요청을 늦추기 어려운 점으로 꼽힌다. 
이날 전체회의에 참석한 정황근 농식품부 장관은 “상대국에서 1년11개월이 넘는 기간 심의가 진전되지 않는 것에 대해 지속해서 불만을 제기해왔다”며 “두 국가가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가능성까지 공공연하게 언급하고 있는 데 현실화된다면 우리 정부가 승소할 가능성은 매우 낮고 이에 따른 피해는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WTO 패소에 따른 대가를 치르는 것보다 지금 마련된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안을 바탕으로 수입을 하는 편이 여러모로 유리하다는 게 농식품부의 판단이다.
프랑스·아일랜드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안을 살펴보면, ▲30개월 미만의 소에서 생산된 쇠고기(뇌, 눈, 머리뼈, 척수 등 내장 제외)로 수입대상을 한정하고 ▲수입재개 이후 BSE 추가 발생 시 쇠고기 수입 겸역을 중단하고 ▲육류작업장은 한국 정부가 현지점검이나 기타 방법으로 승인하기로 한다는 내용 등이 포함돼 있다. 이는 일반적인 조건보다 높은 수준의 수입 조건이라는 게 정부 설명이다.
◆전문가 “유행성출행병 유입 가능성 배제하지 못해”=이날 전체회의 직전까지 정부·국회 관계자들 사이에선 “심의가 무난히 통과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프랑스와 아일랜드가 WTO 제소를 하면 우리가 승소 가능성이 작은데다, 두 국가는 세계동물보건기구(WOAH) 기준상 BSE 발생 위험 무시국에 해당해 교역 자체를 거부할 명분이 떨어진다는 판단에서다.
참고인으로 농해수위 전체회의에 참석한 박선일 강원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는 “해당국에선 BSE 발생률이 100만마리당 1마리 수준에 해당하기 때문에 ‘무시할 위험’으로 간주해도 된다”면서 “정부가 제출한 보고서는 과학성과 정당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며 정부의 이번 수입 추진 절차에 대해 옹호했다.
하지만 농해수위는 여전히 안전성 이슈가 해결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특히 프랑스는 BSE뿐만 아니라 WOAH가 지정한 가축전염병인 ‘유행성출혈병(EHD)’ 발생국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참고인이자 현장 전문가인 남기준 한국소임상수의사회 권익보호위원장은 “해당 질병은 현재 유행 중인 럼피스킨병과 유사해 국내 산업에 큰 피해를 줄 수 있고 퇴치가 매우 어렵다”면서 “EHD 방역에 대한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우리 현실을 고려하면 수입 허용에 따른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제주 서귀포)은 “정부가 지난 2년간 프랑스에서 발병하는 여러 질병에 대한 검토와 대안을 마련했어야 하는데 준비가 미흡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질책했다.
◆국내 한우 공급과잉 상황서 수입국 확대 시 농가 피해 명약관화=프랑스와 아일랜드 쇠고기 수입을 허용하면 그 피해가 고스란히 한우농가에 돌아간다는 점도 이번 계류 결정이 나올 수 있었던 중요한 논거로 작용했다.
지난 2018년 41만5400t이었던 쇠고기 수입량은 2022년 47만4500t으로 매년 증가세를 보였다. 게다가 2026년 미국을 시작으로 2027년 EU, 2028년 호주산 쇠고기에 대한 무관세 조치가 시행 예정이어서 국내 생산기반이 흔들릴 우려가 큰 상황이다.
김삼주 전국한우협회장은 “EU산 쇠고기는 지금도 세계 시장에서 미국산 쇠고기보다 가격경쟁력 우위에 있다”면서 “한우농가가 소 1마리를 팔 때마다 200만원씩 손실이 나고 있는 상황에서 두 국가로부터 수입이 이뤄지면 농가 붕괴는 가속화될 수 있어 원천적으로 수입에 대해 반대한다”고 밝혔다. 한우협회는 이와 관련해 한우법 제정, 송아지 생산안정제 현실화, 사료값 완화 대책 등 여러 선결 과제를 정부에 제시한 상태다.
홍문표 국민의힘 의원(충남 홍성·예산)은 “두 국가 수입이 이뤄지면 다른 EU국가들도 모두 개방을 요구할 텐데, 농가 피해를 막기 위한 준비가 되지 않은 채로 수입을 열어선 안 된다”면서 “정부는 ‘앞으로 2년간 농가 피해를 막을 방안을 마련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해당국에 설명하고, 이를 현실화하는 데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하늘 기자 sky@nongmin.com

<출처  :  농민신문 >  [바로가기]